
포스트 베트남 영화의 총결산, 평가를 둘러싸고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지만 어찌됐든 간에 한 시대의 미국과 헐리우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 되었다.
1979년 칸느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1980년 아카데미 8개 부문(작품/감독/편집/각색/남우조연/미술/촬영/음향상) 노미네이트되어 2개 부문(촬영, 음향상) 수상. 1980년 골든글로브 감독상, 남우조연상, 음악상 수상, 1980년 영국 아카데미 감독상, 남우조연상 수상. 디렉터스컷판이 2001년 칸느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 초청.

젊은 시절부터 이 작품에 매료되었던 코폴라 감독은 원작을 재구성하여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에 대한 철학적인 주제를 담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각색가인 존 밀리어스가 시나리오 작업을 착수하면서 본격적인 영화화에 들어갔다.
하지만 영화가 완성되는 길이 사선을 넘나드는 오랜 전투가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캐스팅 단계부터 난항을 겪기 시작한 촬영은 당시 필리핀의 독재정권인 마르코스 정부가 공급하겠다고 한 부분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최악의 기후를 맞은 정글에서 배우들은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려갔고 코폴라 감독 자신도 영화에 대한 자신감과 자제력을 잃으면서 공황을 겪기에 이르렀다. 시나리오는 촬영 도중 계속 수정되었고 사람들은 마약에 손을 대기도 했다.

제작비는 1천 6백만 달러에서 3천 2백만 달러까지 늘어났다. 코폴라 감독은 개인 소유의 모든 것을 담보로 잡아야했고 이 때문에 그의 빚은 1천 6백만 달러를 웃돌았다. /
처음에는 필리핀 정부에서 헬리콥터와 조종사를 공급해주기로 동의했었으나 마르코스 정부가 반란군의 진압을 위해 헬리콥터와 조종사를 제대로 공급해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촬영이 자주 중단되었다. /
제작진은 촬영도중 40년 만의 최악의 허리케인을 맞았다. 바로 눈 앞에 있는 자신의 손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비바람이 촬영세트를 망가뜨렸고 이때문에 6주 동안 촬영을 접어야 했다. /
윌라드 대위 역의 마틴 쉰이 촬영 도중 심장 발작을 일으키자 마틴 쉰의 형제들이 필리핀으로 불려와 마틴 쉰의 대역이 되어 촬영을 하기도 했다. /
말론 브란도는 감독이 상상했던 커츠 대령보다 몸집이 너무 커서 준비한 의상 중 어느 것도 맞는 것이 없었다. 코폴라 감독은 그의 상반신만을 찍어야했다. /
대부분의 영화가 일반적으로 6개월간 하는 후반작업이 이 작품은 2년 넘게 걸렸다.

미군 헬기 부대가 바그너의 음악을 확성기로 크게 틀면서 지상을 무차별 공격하고, 미군 병사들이 플레이보이 걸들의 공연장에서 집단 광기를 분출하는 장면이라든지, 말론 브란도가 머리를 빡빡민 채 밀림 속에서 사교 교주처럼 등장하고, 윌라드가 커츠를 살해한 뒤 환각 상태에서 강물을 거슬러가는 마지막 장면 등으로, 이 영화는 월남전 영화 중 최고의 문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이틀 동안이나 취해 있었다. 그가 거울을 깨뜨리고 흘리는 피는 그의 진짜 피이다.
필리핀 밀림의 악천후 속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예정 촬영기간을 다섯배, 예산을 두배 이상 초과하였으며, 마틴 신을 비롯한 여러 관계자를 신경쇠약에 빠뜨렸고 감독 자신은 영화 완성을 위해 집까지 저당잡혔다.
집착이 깊어진 코폴라는 79년 칸영화제의 공식 월드 프리미어 전에 미국에서 엠바고를 전제한 시사회를 개최했다가 기자들이 이를 어기자 미국 언론을 공개 성토하기도 했다.
특히 엔딩 부분에서 번민을 거듭하던 코폴라는 79년 칸영화제에 다른 엔딩 촬영분을 들고가 공식 시사 후 따로 작은 극장을 빌려, 생존자들이 보트를 타고 밀림을 빠져나가는 관습적인 엔딩의 편집판을 재시사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결국 <지옥의 묵시록>은 <양철북>과 그해 황금종려상을 공동 수상하고 첫번째 엔딩 그대로 개봉됐지만 35밀리 버전 엔딩 크레딧에 밀림의 사원이 폭격당하는 장면이 추가돼 한번더 작은 혼란을 일으켰다.

코폴라 감독은 디렉터스컷에서 추가된 장면 중 가장 강력한 의미를 담은 것은 커츠가 윌라드에게 1969년 12월 12일자 <타임>지에 실린 베트남 전쟁 기사를 읽어주는 모습이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79년 개봉 당시 명시하지 않았던 영화 속 현실의 시간을 분명히함으로써 이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이 장면 또 미국 정부의 언론 조작을 통한 거짓말을 비판하는 감독의 주제 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또 코폴라가 강조한 역사 인식은 윌라드가 밀림 속 프랑스인들의 농장을 발견하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농장을 지키고 있는 그 가족과의 대화를 통해 코폴라는 베트남 전쟁의 기원이 프랑스의 식민지 경영에 있고, 미국의 실수와 오판이 그 뒤를 이었다고 명백하게 비판한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프랑스인 농장주의 대사. "우리가 여기에 남아있는 것은 가족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운다."는 감독은 서구의 아시아 식민지 경영을 '가족 이기주의'차원에서 비판하고 있다.
이밖에 헬기 연료가 떨어져 돌아가지 못하는 플레이보이 걸들에게 접근한 윌라드 대위와 병사들이 연료를 주고 성관계를 갖는 장면도 추가됐다. 감독은 전쟁이 남자의 생명과 여자의 육체을 착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폴라 감독은 2001년 칸느 영화제를 통해 디렉터스컷(Redux)을 소개하면서 "처음 이 영화 촬영을 끝냈을 때, 내 손에는 5시간짜리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우리는 거칠게 필름을 잘랐다. 당시 나는 내 집을 저당 잡힌 상태라 일단 개봉했어야 했다.
오늘 새로 내놓은 판본에는 그때 집어넣지 못했던 장면들을 충분히 넣음으로써 일부 등장 인물의 심리 상태를 명료하게 하고, 나 자신에게도 애매하게 느껴졌던 끝 장면을 정리했다."라고 했다.
2001년 국내 소개되는 196분짜리 새로운 '리덕스(redux)'편에는 프랑스 농장 장면과 플레이걸 장면,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말론 브란도와 마틴 쉰의 대화 장면 등 53분이 추가되었는데, 홍보사의 보도자료에서 밝힌 자세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서핑보드를 훔치는 윌라드 일행'. 윌라드 대위가 킬고어의 서핑보드를 훔친 뒤 정글에서 숨어 있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처음에는 인간적인 우정을 나누고 있음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그들 모두는 즐거운 여행처럼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의 순수함은 그들에게 닥칠 비극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효과를 낳는다.
/ '윌라드 일행과 플레이 걸들의 재회'. 1979년 오리지널 버전에서 위문공연이 난장판으로 변한 뒤에 잘렸던 장면으로 위문공연이 끝난 뒤 정글로 향하던 윌라드 일행이 연료가 떨어진 플레이 걸들과 재회, 연료와 섹스를 교환하게 되는 내용이 들어있다.
/ '프랑스 농장 가족들과의 만남'. 윌라드 대위가 어린 흑인 병사의 장례식을 치른 뒤 그곳에서 한 프랑스 가족을 알게 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윌라드는 그 가족과 적의에 찬 저녁식사를 하고 그날 밤 그 가족의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오래 전에 소멸한 이상향에 대한 바램과 추구 그리고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어리석은 행동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커츠 대령과 윌라드'. 1979년 오리지널 버전에서 말론 브란도의 장면은 영화 마지막의 30분도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버전에서는 말론 브란도와 마틴 쉰이 베트남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첨가되었다.
written by 홍성진


출처 : ♡꼬마키디의 작은 이야기♡
글쓴이 : 꼬마키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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