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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수 목사님 생각

gurung 2009. 4. 8. 11:15

한명수 목사가 직접 들려주는 목회 40년사
 

나는 스무 살 때 처음 교회에 나갔고,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얻은 다음에는 ‘이 세상에 목사 아니고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 구하는 일을 하는 목사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존경스러운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목사를 흠모해왔다.

목회생활 40년을 뒤돌아보면 그렇게 흠모하고 부러워했던 목사생활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이 일이 장미가 만발한 길을 지나는 것처럼 아름답고 화려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도 전국의 목양지에서 밭을 가는 소처럼, 묵묵히 주신 사명에 순종하는 수많은 목사님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그들에게 한없는 존경심과 함께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나는 1991년 위암 3기라는 진단을 받고 이듬해인 1992년 1월 3일 원자력병원에서 위를 완전히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도 수술 부위 임파선에 암세포가 70퍼센트나 퍼져 있어 언제 병이 재발할지 모르는 가운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 주님을 의지하며 모든 일에 충실해야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아직도 위선과 거짓의 탈을 벗지 못한 채 인간의 나약함 속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면 괴롭다.  그래도 한국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의 건강한 목양생활이 있는 한 한국과 세계교회의 앞날이 밝으리라 기대하면서 빛나는 내일을 소망하며 살고 있다.

각 교회에 신학생들이 속출하고 목사님 자녀들 가운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나의 세 아들 가운데는 단 한 명도 목사 지망생이 없다. 때로는 그 일이 부끄럽다가도 어떤 때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복음사역의 후계자가 없다는 것은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처럼 무익한 종이 될 바에야 차라리 좀 더 진실한 다른 일꾼이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하는 게 훨씬 다행스럽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나 한사람의 어지럽힘도 주님께 송구한데 하물며 자녀들까지 그럴까봐 두려워서 한 번도 세 아들에게 목사가 되라고 권면해본 일이 없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신다면 대답은 본인들이 할 것이므로 내가 인위적으로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높아지면 천사보다 귀하고 낮아지면 마귀보다 더 추악한 곳까지 내려간다"는 우찌무라 간조의 말처럼, 목사야말로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진실하면 한없이 존귀하지만 위선의 탈을 벗지 못한 채 단지 목사를 직업으로, 생업의 수단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낮고 천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이 앉아 계셔야 할 자리에 인간인 목사가 차고 앉아 부귀와 존엄을 전부 가로챈다면 그것은 차라리 저주의 자리가 될 것이다.

 

 --잠시 뵈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격동의 40년 목회사, 회고록에 담은 한명수 목사
한국교회 후학 귀담아 들은 이야기 풍성…치부 드러냄 통해 교훈 얻어야
입력 : 2007년 11월 22일 (목) 11:08:07 [조회수 : 8446] 이승균 ( 기자에게 메일보내기

   
 
  ▲ 한명수 목사는 교회나 사회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사와 저돌적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과감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투사와 같은 일면을 지니고 있다.  ⓒ뉴스앤조이 신철민  
 
국내 보수교단의 터줏대감격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한명수 목사(74, 창훈대교회 원로)를 떠올릴 수 있다.

그는 예장합동 기관지 <기독신문> 주필을 14년 동안 역임한 언론인으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 총무 △총신대 재단이사와 운영이사 재임 20년 △총회 임원 4년 △한국찬송가공회 대표회장과 공동회장 8년 △2003년 부활절연합예배 대회장 △한국교회연합을위한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 상임대표회장 △한국교회 최초 제비뽑기 원년 총회장 등 굵직한 직책을 두루 역임했다.

한 목사는 교권의 핵심부에 있으면서도 결코 교권주의자로 군림하지 않았으며, 보수 교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친미반북 인사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교회나 사회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사와 저돌적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과감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투사와 같은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가 <기독신문> 주필 시절, 편집국장이 당시 대기업 총수였던 신문사 사장에게 기사 게제 여부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는 일이 발생하자, 언론의 생명과 같은 편집권을 무시한 잘못을 물어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일은 그의 불같은 성품을 잘 나타내주는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3선 개헌 반대 대열에 합류하였고, 김영삼 정권의 '3당 야합'과 관련, 기독교 언론사를 향한 홍보공세가 한창일 때도 한 목사는 그들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44년의 목회 인생 동안 숱한 화제 거리를 몰고 다녔던 이 유명한 원로가 ‘목회 40년의 비사’라는 부제가 붙은 <잊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한편 한 목사가 교단이나 교계의 어른으로서 대우받는 것은 남이 갖지 못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 한 목사는 흔히 강한 추진력을 지닌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통한다. 대화나 타협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저돌성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 책에는 교권의 핵심에서 일어났던 비밀스런 치부도 담겨 있으며 추잡한 교회 정치의 단면도 들어 있다. 한 목사는 이 책에 대해 "아마 궁금해서 못 견디는 목사들 많을 거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 <잊지 못할 사람들>/ 한명수 지음/ 생명의말씀사 펴냄/ 392쪽/ 1만 5000원  
 
하지만 한 목사의 '투사'와 같은 이미지는 창훈대교회 목회 현장에서나 사석에서는 찾아볼 길이 없다. 그는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는 것이 눈이 3개 달린 것보다 낫다'는 격언을 항상 잊지 않을 정도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며 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40년 전 우범지대이자 상이용사들의 집단 거주지 수원 연무동에 교회를 개척한 것도 불우하고 그늘진 이웃들에게 한줄기 빛을 던지고자 했던 목회 이념 때문이다. 한 목사는 지금도 세계밀알장애인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장애인을 향한 애정을 펼치고 있다.

한 목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경력은 그가 1991년 12월 위암말기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일이다. 단 5%에 불과한 생존확률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를 거의 잘라내는 대수술 후 현재까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훨씬 풍부해진 해학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정을 간직한 채 말이다.

한 목사의 뒤를 이어 창훈대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이훈복 목사는 그의 회고록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격동의 한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나아갈 길을 모색한 이 책은 누구에게나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저자의 인생여정과 목회여정은 후대에 우리 성도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자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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