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뵈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며 |
격동의 40년 목회사, 회고록에 담은 한명수 목사 | ||||||||||||||||||||||||
한국교회 후학 귀담아 들은 이야기 풍성…치부 드러냄 통해 교훈 얻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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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장합동 기관지 <기독신문> 주필을 14년 동안 역임한 언론인으로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초대 총무 △총신대 재단이사와 운영이사 재임 20년 △총회 임원 4년 △한국찬송가공회 대표회장과 공동회장 8년 △2003년 부활절연합예배 대회장 △한국교회연합을위한교단장협의회(교단장협) 상임대표회장 △한국교회 최초 제비뽑기 원년 총회장 등 굵직한 직책을 두루 역임했다. 한 목사는 교권의 핵심부에 있으면서도 결코 교권주의자로 군림하지 않았으며, 보수 교단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친미반북 인사로도 여겨지지 않는다. 그는 교회나 사회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거침없는 언사와 저돌적 행동으로 자신의 의사를 과감하게 표현하는 일종의 투사와 같은 일면을 지니고 있다. 그가 <기독신문> 주필 시절, 편집국장이 당시 대기업 총수였던 신문사 사장에게 기사 게제 여부에 대한 사전 승인을 받는 일이 발생하자, 언론의 생명과 같은 편집권을 무시한 잘못을 물어 당장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일은 그의 불같은 성품을 잘 나타내주는 유명한 일화다. 그리고 3선 개헌 반대 대열에 합류하였고, 김영삼 정권의 '3당 야합'과 관련, 기독교 언론사를 향한 홍보공세가 한창일 때도 한 목사는 그들의 요청을 한사코 거절했다. 44년의 목회 인생 동안 숱한 화제 거리를 몰고 다녔던 이 유명한 원로가 ‘목회 40년의 비사’라는 부제가 붙은 <잊지 못할 사람들>이라는 회고록을 펴냈다. 한편 한 목사가 교단이나 교계의 어른으로서 대우받는 것은 남이 갖지 못한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계에서 한 목사는 흔히 강한 추진력을 지닌 고집스러운 사람으로 통한다. 대화나 타협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는 저돌성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 책에는 교권의 핵심에서 일어났던 비밀스런 치부도 담겨 있으며 추잡한 교회 정치의 단면도 들어 있다. 한 목사는 이 책에 대해 "아마 궁금해서 못 견디는 목사들 많을 거야"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40년 전 우범지대이자 상이용사들의 집단 거주지 수원 연무동에 교회를 개척한 것도 불우하고 그늘진 이웃들에게 한줄기 빛을 던지고자 했던 목회 이념 때문이다. 한 목사는 지금도 세계밀알장애인선교회 이사장을 맡아 장애인을 향한 애정을 펼치고 있다. 한 목사를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경력은 그가 1991년 12월 위암말기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한 일이다. 단 5%에 불과한 생존확률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를 거의 잘라내는 대수술 후 현재까지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훨씬 풍부해진 해학과 사람을 향한 따뜻한 정을 간직한 채 말이다. 한 목사의 뒤를 이어 창훈대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이훈복 목사는 그의 회고록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격동의 한 시대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나아갈 길을 모색한 이 책은 누구에게나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라며 "저자의 인생여정과 목회여정은 후대에 우리 성도들에게도 많은 귀감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자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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