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섬님 -시간, 기억의 통점...4.19
시간, 기억의 통점
혼잣말-日記 | 2009/04/18 04:49 | 언제나 섬이었다
블로그에 나만의 방을 구해 글을 올리던 처음의 4월 19일은 피멍이 시퍼렇던 봄이었다.
그렇듯 우리의 역사의 관점에서의 4월과 5월과 유월은 연이은 상처를 덧내고 덧내는 옹이 깊은 아픔을 재현, 가능하게 하는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음은 이상한 카르마, 업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기억하는 者만이 저절로 이입이 되는 처연한 역사의 서늘한 통점이다.
사실, 잊고 살아도 세상을 사는 한 개인으로서는 그리 달라질 것도 없다.
더구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기억하지 않는 대가는 또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보아도 무방한 세상이다.
거기다가, 세상은 역사를 기억하지 않고 사는 者들에게 더 유익할 지도 모른다.
사회를 구성하고 그 사회를 이끌어 가는 상류층이야말로 그닥 답답할 일이 없으므로 세상에 더욱 무심한 사람이 기억하고자 이야기하는 者들을 비웃기도 한다.
그닥 답답할 일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까지 보태어 포장하여 기억하는 者들의 기억력이 가난을 초래한 원인이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해서, 세상을 삶에 있어 고통분담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부류로 사는 것이 바로 “잊자, 잊자.”함이다.
그러면 그들도 기억하지 않는 대가로 엘리트적인 무관심을 빙자하여 그들의 부류를 쫒아 사회의 상류층이 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급기야 잊어야 사는 세상이 세상과 화해한다고 믿는 세상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난한 서민인 나는 아직도 4월이 시작도 전에 생명이라는 고귀한 시작이 늘 아프다는 통증을 느낀다.
그런 나를 나는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해마다 4월이라는 통점의 수위는 점점 더 깊어만 간다.
자꾸 더 아프다.
개인적으로, 더 아프다.
언젠가 모분이 댓글로 4.19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행복할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기억해보니 오히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 불행하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는 中이다.
어떤 영향력을 가질 수 없는 개인으로서, 또 지극히 개인적인 개인사로서의 개인으로 오히려 이러한 기억들이 생활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단지 내가 기억하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세상이 나를 짜깁기하는 까닭에 생활을 위태롭게 본다는 사실이 바로 위태로움의 근거이다.
그들만의 오해가 비생활인의 표상이라는 사실이 요즈음은 오히려 더 설득력 있다는 동의를 스스로에게 강요를 한다.
단지, 잊고 살면 더 편하다는 이유 하나로 다가오는 4월 19일을 미리 이야기해야하는 이 봄이 무척 아프다.